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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도 배상도 없었다"…英여왕 애도 못하는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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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셉경 댓글 0건 조회 613회 작성일 22-12-22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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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9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바라보는 아프리카 지역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들의 착잡한 심정을 12일(현지시간) AFP 통신이 조명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26년 출생·1952년 즉위)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존속한 대영제국 시대 마지막 통치자다. 노예제와 식민주의 등 과거사에 사과하고 배상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입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케냐와 나이지리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우간다에 이르는 아프리카 지역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망이 과거사에 대한 민감한 논쟁을 되살리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 국가들이 일삼은 식민지 역사와 그 시기 자행된 범죄에 대한 배상,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박물관에 수년간 보관 중인 아프리카의 도난 유물 반환 논란 등이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부친 조지 6세의 서거에 따라 즉위하던 해인 1952년 케냐를 방문한 바 있다.


케냐 최대 일간 데일리 네이션은 지난 주말 사설에서 "여왕은 케냐인에 대한 잔혹한 탄압과,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라는 뒤섞인 유산을 남긴다"고 평했다.


매체는 "유일한 죄라면 독립을 요구한 것뿐인 국민에게 자행된 잔학 행위는 케냐 역사의 피비린내 나는 한 장이 됐다"면서 "영국과의 관계는 유용했지만, 그런 잔학한 행위들을 잊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나이지리아는 1958년 런던제헌의회 결정으로 1960년 독립했다. 이 같은 독립 결정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는 평가는 존재한다.


그러나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이어진 '비아프라 내전' 기간 여왕 치하 영국이 군부를 지원한 사실도 똑똑히 기억한다. 이 기간 100만 명 이상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우후 아냐 교수는 카네기 멜런대 교수는 트위터에 비아프라 내전과 관련, "누군가 내게 '정부가 후원한 집단학살을 감독한 군주'를 경멸하는 것 외에 뭐라도 표현하길 바란다면…차라리 별에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적었다.


남아공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여왕을 '비범한 인물'이라고 칭송했지만, 야당인 경제자유전사운동(EFF)은 1948년 백인 기반 국민당 정부 수립 후 실시된 극단적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적했다.


EFF는 "우리는 엘리자베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며 "엘리자베스의 죽음은 우리에게 이 나라와 아프리카 역사의 매우 비극적인 시기를 떠오르게 한다"고 밝혔다.



케냐 출신의 무코마와 응구기 코넬대 부교수는 트위터에 "만약 여왕이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대해 사과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앗아간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배상할 것을 왕실에 촉구했다면, 나도 (여왕의 죽음에) 인간적 도리를 다해 아파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여왕 생전 사과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응구기 교수는 "케냐인으로서 나는 아무 느낌도 없다"며 "이 연극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http://n.news.naver.com/article/421/0006330993?s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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